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성 라이온즈/사건사고 (문단 편집) === 1995년 [[최창양]] 편법 입단 파문 === 1995년 12월 삼성이 [[최창양]]을 편법적으로 영입하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마산고와 중앙대 출신의 최창양은 위력적인 빠른 공으로 고교시절과 대학시절 큰 주목을 받았고 대학 졸업 후 연고 구단인 [[롯데 자이언츠]]에 지명될 것이 유력시되던 선수였다. 그런데 최창양은 중앙대 시절인 1994년말 돌연 미국 진출을 선언하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헐값에 계약하고 미국에 진출했다. 최창양은 국내에서는 유망주였지만 애초에 미국에 진출할 만큼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필라델피아와의 계약금은 불과 4만 달러(3167만원[* 1994년 12월 기준환율 791.86원])로 120만 달러를 받은 [[박찬호]]의 1/30밖에 안되었고, 1년 후 삼성에서 받은 계약금 5억원의 1/15도 안되는 헐값이었다. 최창양은 1년간의 마이너리그 싱글A 시절을 거쳐 1년만인 1995년 12월 국내로 유턴하여 [[삼성 라이온즈]]에 신인으로는 역대 최고액인 계약금 5억과 연봉 4천만원을 받으며 입단했다. 이와 별도로 삼성은 필라델피아에 1억 6천만원의 현금 트레이드 비를 지불했다. 그러자 삼성이 타구단 연고지 출신의 유망주를 가로채기 위해 미국에 진출시킨 후 복귀시켜 영입한 것이라는 의혹이 일며 파문이 일었다. 당시 스포츠신문과 주간지 등에서 이를 대대적으로 포도하며 큰 파장이 일었다. 논란이 발생한 후 최창양의 연고 구단인 [[롯데 자이언츠]]가 법정 대응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런 사태를 생각지도 못했었기 때문에 관련된 규정 자체가 아예 KBO에 없었다. 때문에 최창양의 편법적인 영입을 제재할 수단은 전무했다. 결국 최창양 사태 직후 미지명된 해외진출 선수는 국내 복귀시 신인 지명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KBO 규정이 바뀌게 되었다. 소급 적용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사자인 최창양은 이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았다.[* 비슷한 경우로 국내에서 고교 및 대학을 졸업한 뒤 곧바로 미국, 일본 프로 팀에 입단했다가 귀국한 뒤 군경팀에 입대한 선수들의 퓨처스리그 출전이 2016년부터 불허되었으나 정작 이 규정을 만들게 한 당사자였던 [[김선기(야구선수)|김선기]]는 이를 적용받지 않았다.] 삼성은 [[최창양]]을 영입하는데만 현금 트레이드비를 포함해 총 7억 원을 들였을 뿐만 아니라, 입단 당시 이같은 편법 논란에 휩싸이면서 삼성 구단의 이미지까지 실추시키는 홍역을 치뤘지만, [[최창양]]은 구속이 빠르지만 제구가 안되는 투수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하며 삼성 스카우트의 흑역사로 남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